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

점등식 : 2024년 4월 20일(토) 오후 7시30분
봉축법요식 : 2024년 5월 15일(수)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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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깨어있는 삼매의 경지로

5월 온라인 주말명상

5월 3일(금) ~ 5월 5일(일)
(2박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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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해외순회강연 일정

2024년 4월 29일(월) ~ 5월 6일(월)
북미 7개 도시 (총 8회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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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4 행복한 대화

법륜스님의 오프강연 행복한 대화 시즌2!
오프강연이 전국 15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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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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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사람을 살리는 인연

“안녕하세요. 부산울산지부 수영지회 경전대학 진행자 이민영입니다.” 첫 인사와 더불어 자신은 복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해맑게 웃는 이민영 님을 만났습니다.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고 반듯한 모습은 옛 초상화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했습니다. 궁금해지는 이민영 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인연 저는 함양 박씨 종부입니다. 집안일에 손 놓은 시어머니 대신 결혼 초부터 종갓집 살림을 했습니다. 일 경험도 요령도 없는 새댁이 제사 음식과 수십 명의 손님 치르기가 버거워 몸은 늘 탈진 상태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링거를 맞고 버텼습니다. 남편에게 힘들다고 도움을 청하거나 투정하면, “그게 왜 내가 도울 일이냐? 당신 일이고 책임이지”라며 무시했습니다. 박씨 집안 제사를 왜 나 혼자 몸고생, 마음고생, 경제적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지, 원망과 억울한 심정으로 30년 세월을 살았습니다.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수자타 아카데미 2020년 설날, 예년처럼 제사와 손님 접대로 정신없는 와중, TV에서 스님과 질문자의 문답식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설날 특집 방송으로 진행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었습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하지?’라고 생각하며, 방송에 귀 기울였습니다. 저는 법륜스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질문에 유연하고 명쾌한 답을 들으며, 스님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에 꽉 찼습니다. 겨우 짬을 내 ‘법륜스님’을 검색했습니다. 연관 검색어에 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9년 35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사찰 중심 전국 일주를 계획했습니다. 사찰 여행과 주변 맛집 탐방으로 나만의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이라는 검색어를 본 순간, 먼저 불교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불교대학 입학 신청서를 냈습니다. 즉문즉설이 맺어준 정토회와의 인연, 첫 단추를 야무지게 채웠습니다. 선배 도반들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토회와 인연 맺으려고 몇 년 정성을 들여도 잘 안 되는데, 민영 님은 스스로 정토회를 찾아와 좋은 인연을 이어 가니 복도 참 많다, 많아.” 맞습니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정토회 모자이크 붓다로서의 삶이 복 받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중.right 고대하던 첫 수업, 종교로서의 불교도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배운다라는 법륜스님 말씀에 호기심과 궁금증이 솟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종교는 기복 신앙으로 늘 기부를 강요하는 듯했습니다. 종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거나 종교인들의 비리가 드러날 때 ‘종교는 신을 빙자한 사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이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정토회 이념이 제 신념과 잘 맞았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제가 서있는 곳에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물질적으로 부족했지만, 정 많고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굶지 않고 무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착하고 공부 잘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고 자식이 많아, 삼 일 밤낮을 울며 고집 피운 덕에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오빠와 동생들 학업과 맞물려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장학금 받아 해결하겠다. 졸업 후 취업하면 동생들 학비도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부모님을 설득해 장학금 받는 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담배 농사를 지었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맡아 바깥일로 늘 바빴습니다. 엄마는 집안일에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농사일로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바쁜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농사일도 거들었습니다. 엄마가 낮에 담배를 따면, 밤늦도록 담배 엮는 일은 언제나 제 몫이었습니다. 엄마는 오빠나 남동생에게는 늘 공부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서러운 줄도, 불평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라도 공부시켜 준 부모님께 감사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께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졸업 후엔 은행에 취직하여 집안을 도울 수 있어 마냥 좋았습니다. 어릴 때 제 꿈은 문교부 장관, 지금의 교육부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간절하게 공부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데, 왜 할 수 없는지 불만이었습니다. 누구든 공부하고 싶다면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2023년 11월 두북수련원, 김장 봉사 활동 결혼, 그 전쟁 같은 삶 이십 대의 저는 의지와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마음먹은 일은 꼭 했고, 실패 없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멋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잘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스물한 살에 만난 남편은 자상한 것 빼곤 무엇 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천막을 치고 살아도 두려울 게 없다라고 믿었습니다. 부모님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제 고집으로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결혼 생활 30년 내내 쉼 없이 몰아닥쳤습니다. 결혼 생활은 내 한 몸 피할 곳 없는 전쟁터 같았고, 칼 한 자루로 빗발치는 화살을 막아내는 고군분투한 삶이었습니다.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친정엄마와 성향이 다른 시어머니는 가사에도 육아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 년에 제사가 열한 번인 종갓집의 대소사를 막 결혼한 제게 맡겼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아내에게 배려와 공감 없는 이기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양육과 병행했던 직장생활은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후 시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5년간 병시중을 하고, 병원비까지 감당하자 저는 완전 탈진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았을 땐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하늘이 무너지듯 참담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해 친정에 의지할 수도 없었고, 외롭고 모진 세월을 오롯이 혼자 감당했습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술을 진탕 먹은 어느 날, 마침 집에 온 아들을 붙들고 대성통곡 했습니다. 2023년 12월 경전대학 학생들과 JTS 거리모금 활동 남편의 빚 보증을 선 저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퇴직금은 고스란히 빚 청산에 쓰였습니다. 이혼 후 고향에서 친정 부모님과 마음 편히 살고자 했지만, 이 희망도 하늘은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큰아들이 이혼했습니다. 어린 두 손녀를 돌보는 커다란 숙제가 떡하니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시련이 끊이지 않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죽어야만 불행이 끝나는가? 삶의 끈을 그만 놓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한 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운명처럼 만났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세상엔 절묘한 인연을 맺는 순간이 있나 봅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사람을 살리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수행의 힘 법륜스님의 법문은 스펀지가 물을 만난 듯 제게 스며들었습니다. 결혼으로 삶이 힘들었기에 모든 법문은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문즉설 내용은 더 큰 공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저거 내 얘기인데, 저 말씀은 나한테 하는 얘기인데….’ 매 순간 깨우침이었고, 감사였으며, 눈물이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수없이 했습니다. 법문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 기쁨으로, 감사로 나를 채웠습니다.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중 이민영 님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제게 스님은 매일 고마운 분이었고, 법문은 하루를 시작하고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힘들어서 죽고 싶었던 순간들, 왜 내게 이런 고난들이 쉼 없이 밀려오냐?라며 원망으로 산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30년, 그 아픔과 고통이 있어 지금 자유로움과 기쁨을 누립니다. 제게 닿은 세상 모든 인연이 필요한 것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견디고 살아내니 복으로 이어짐도 깨닫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통해 ‘모든 분별심은 내 마음이 일으킴’을 마음 깊이 깨달았습니다. 처음으로 지극히 ‘평안한 마음’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체험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외도한 남편에게 삼 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 투명 인간 취급했습니다. 내 삶의 불행이 모두 남편 때문이라며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는 남편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와 함께하는 일상이 괴롭지 않고 편안합니다. 2022년 3월 사랑하는 두 손녀와.left 새벽 기도를 하며 온전히 깨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누립니다. 봉사와 전법 활동을 통해 도반들과 함께 정토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이제는 주변의 각박하고 힘든 상황에 흔들리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제 몫의 일로 담담하게 수용합니다.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하여 제사 때마다 괴로웠던 마음이 죄송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혼한 며느리도, 작은 며느리도, 주변 누구도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섯 살, 일곱 살 때 제게 온 두 손녀는 초등학생이 되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복병을 돌아봅니다. 법문과 수행으로 제 삶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고, 주변과 더불어 사는 삶에도 눈을 뜹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용서 못 할 사람을 용서하고, 태산 같은 어려움을 대처하는 힘은 바로 매일의 수행에서 나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수행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복 받은 삶’을 누린다는 이민영 님. 외롭고 힘든 전쟁터 같았던 삶을 포용하고 그 삶에서 생긴 상처와 화해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가시밭길 30년, 힘든 삶 속에서 무한 자기 긍정을 끌어낸 것은 매일의 수행임도 깨닫습니다. 그의 단단한 수행의 힘이 참 부럽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이혜정 희망리포터 편집이주현

수영지회 2024.04.24. 1,83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우리는 돕는 게 아니라_함께하는 것입니다!_JTS일산다문화센터 개원식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개편되면서 정토회 소유의 일산법당은 2024년 JTS 일산다문화센터로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3월 16일 새벽 6시 30분. JTS일산다문화센터 개원식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 든든하게 활약할 모자이크 붓다들이 속속 모였습니다. 피곤할 법도 한데, 그저 모이기만 하면 연신 웃음꽃을 피우는 도반들을 보니 오늘 행사 걱정이 싹 사라집니다. 주인된 마음으로 손님맞이에 집중하는 도반들과, 개원을 축하하기 위해 걸음하는 수많은 손님들이 모여 북적북적 한바탕 신나게 치렀던 잔치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개원 행사 시작 전부터 법당 안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이 모여 법당 안이 북적북적하니 옛날 생각이 나네요. 법당이 없어지지 않고 이렇게 다문화센터로 재단장해서 쓰이게 돼 다행이에요.” 잠도 설치고 나와 서로 맡은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도반들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습니다. 센터 안은 120명을 예상했으나 192명이 참석하여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바깥 복도 끝까지 양쪽 줄로 앉아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잔칫집에 손님이 많은 것은 흐뭇한 일이지요. 덕분에 공양간 담당 도반들은 더더욱 바삐 음식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10시 30분, 금촌모둠 모둠장 최수영 님이 사회자로 나서 JTS 일산다문화센터 개원식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개원식에는 유수스님, 정토회 대표 전해종 님, JTS 대표 김기진 님, 지부ㆍ지회 법사, 인천경기서지부 지부장과 지회장, 정토회원과 외국인 주민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정토회 대표 전해종 님이 먼저 개원을 축하하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JTS 일산다문화센터 개원을 축하합니다. 개원식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원식을 준비하시느라 일산지회 회원들, 특히 거사님들과 노보살님들이 수고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한 나라 인구의 5가 외국인이면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봅니다. 국내에 250여 만 명의 외국인이 있다고 하니 대한민국도 이제 다문화 국가인 것이지요.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JTS에서 다문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고요. 인경지부에서는 JTS 안산다문화센터에 이어 두 번째로 일산다문화센터를 개원해 정말로 반갑고 뜻깊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 계시지요. 안산다문화센터의 월광법사님. 법사님이 계시다는 건 저희들한테 정말 고맙고 든든한 일입니다. 한인오 실행위원장님이 봉사자, 시설 모두 부족하게 출발한다고 하셨지만, 월광법사님을 비롯하여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응원합니다. 여러 가지 꽃들이 모여 아름다운 화단을 이루듯이, 다문화센터가 복지의 공간을 넘어 세계전법으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되기를 바랍니다.” 뒤이어 JTS 대표 김기진 님이 축하 인사를 전했습니다. “2015년 안산다문화센터가 설립된 이후 9년 만에 세 번째로 문을 연 일산다문화센터 개원식에 참여하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활용도가 떨어진 법당이 이렇게 다문화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다문화 공간으로 의미 있게 쓰일 수 있어 감사합니다. 30년 동안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바뀐 건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누군가에게 받은 복을 우리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는 다문화센터 운영이 활발히 진행될 수 있도록 JTS에서도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일산다문화센터 개원 준비 과정 영상이 상영되고, 일산지회 지회장이자 JTS 일산다문화센터 실행위원장인 한인오 님의 개원 경과보고가 이어졌습니다. “모든 잔치의 숨은 영웅은 뒤에서 모든 것을 준비해주는 분들이지요. JTS 일산다문화센터를 개원하기까지 두 달간 많은 분들이 내 일처럼 수고해주셨습니다. 개원 준비를 위한 회의 11회, 시설 보수와 유관 기관 방문, 공양 준비 등에 투입된 봉사 인원 115명, 개원식 당일 현장 봉사 인원 54명으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모자이크 붓다의 한 조각을 담당하여 큰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한인오 실행위원장의 보고가 끝나자 그동안 수고했던 모든 분들을 위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한 손님들이 많이 참석했습니다. 고양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유미진 국장님, 파주시가족센터 조은미 팀장님,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임경란 국장님, 몽골다문화어학원 ‘나무’의 우레 박사님이 축하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경기도 양주 마하보디사의 아티다 스님 외 두 분의 스님도 참석하였습니다. 아티다 스님의 축하 인사입니다. “이주민들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아주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스리랑카 친구가 다리가 절단된 사고가 있었어요. 의정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폐쇄되어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일산다문화센터가 개원돼 정말 고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차별 없는 사회에서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수고가 한국 사회에 도움 되는 보람으로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도움 받는 우리들 또한 도움 주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JTS 일산다문화센터에서 진행할 한글교육, 의료ㆍ보건지원, 라인댄스, 영어통역, 요리 봉사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봉사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봉사자 대표로 일산지회 황점순 님이 인사를 했습니다. “2년 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보리수 활동할 때 유수스님께서 뭘 잘하냐고 물으셔서 댄스라고 하니까 “그건 어디다 쓰지?” 하셨었어요. 스님, 저는 이제 여기 일산다문화센터에서 라인댄스 봉사로 잘 쓰이겠습니다” 황점순 님의 재치 있는 말에 좌중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오늘 프로그램 중 의미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안산다문화센터의 월광법사님이 축사를 영상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다양한 꽃들이 피어나는 따뜻한 봄날 일산다문화센터 개원을 축하합니다. 저도 임진각에 기도하러 다니면서 이곳 일산법당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이주민 분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에 있습니다. 저희 센터가 다른 센터와 다른 점은 연기적 세계관을 가지고 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우리와 다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잖아요. 부처님께서 이 길을 가셨고 스승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개인은 다 부족하지만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되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모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일산다문화센터가 그 역할을 잘할 거라 믿습니다. 우리 일산지회 회원님들의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정성을 다하다 보면 다문화 가족들에게도 따뜻한 쉼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화면에 담긴 월광법사님의 모습과 축사가 끝나자 벅찬 감동으로 뜨거운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이 자리에도 안산다문화센터 외국인 주민과 고려인, 봉사자들이 축하를 위해 다수 참석했습니다. 불모지와도 같았던 다문화 사업에 월광법사님이 뿌려놓은 씨앗들이 어느새 하나씩 인연을 맺어 지금 세 번째 다문화센터 개원까지 이어졌으니, 법사님의 간절한 발원과 그간의 노고에 잠시 숙연해지는 마음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바꿔 일산지회의 명물인 ‘낮은음 공명 중창단’의 축하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남성회원들로만 이루어진 중창단의 중구난방 노래 공연을 들으며 대중은 배꼽을 잡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아, 역시 공연은 잘하는 것보다 살짝 모자라고 어설프지만 당당하게 임하는 모습이 훨씬 더 큰 재미와 박수를 받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공연으로 들뜬 분위기를 정리하며 유수스님의 개원 축하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일산다문화센터 개원을 축하합니다. 이 자리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몽골, 고려인, 스리랑카, 미얀마, 중국에서도 오셨는데요, 다문화센터가 이분들의 쉼터가 되고 문화의 전당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1ㆍ2차 산업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정토사회문화회관도 거의 동남아 외국인이 지었습니다. 내가 먹고 입고 자는 게 이 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인권ㆍ의료ㆍ법률적으로 열악한 사각지대에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례로 스리랑카인이 최근 한 달에 4명씩이나 자살하고, 다문화인의 자녀도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3040나 왕따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낯선 나라에 와서 고향도 못 가고 외롭고 막막한 다문화인들을 위로하고, 공감해주고, 문제를 해결할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센터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합니다.” 유수스님은 정토회와 JTS에서 다문화센터를 주요한 사업으로 정한 이유와, 이를 대하는 수행자로서 우리의 자세까지도 세세하게 짚어주었습니다. “다문화센터를 건립한 것은 첫째,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곳에 종사하고 있는 이 분들을 위해 그들이 잘 정착하도록 지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과 친구처럼 함께하고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여 그들이 여기에 있든, 자국으로 돌아가든 붓다 담마의 힘으로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들이 받은 대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법의 씨앗을 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산법당이 2011년에 건립되어 좋은 인력들이 배출되었습니다. 매일 와서 절하던 법당이 코로나로 몇 년 쉬었다가 이렇게 다문화센터로 개원해서 잘 쓰이는 곳이 됐으니 무엇 하나 고정된 것 없는 무상함을 느낍니다. 이 인력들이 힘을 모아 다문화인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법의 도량으로 만들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일산다문화센터가 다문화인들의 고향 같은 공간이 되어 법회도 하고, 자국 음식도 만들어 먹고, 불편한 일들도 해소하고, 이렇게 그들이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자긍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남을 돕는다는 마음보다 수행자의 자세로 이들과 함께한다는 관점을 놓치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며 법문을 마쳤습니다. 분위기를 바꿔 일산지회 회원들이 다문화센터 개원을 준비하며 그 마음을 담아 ‘함께하는 공연’을 마련했습니다. “작은 가슴 가슴마다 고운 사랑 모아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아름다운 세상” 옆사람에게 만국기를 전달하고, 노래에 맞춰 함께 깃발을 흔들며 합창하는 순간, 모두가 하나 된 느낌에 가슴 저 밑에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인천경기서지부 향왕법사님의 닫는 인사가 있었습니다. “반가움, 감동, 눈물이 있는 개원식이었습니다. 일산법당이 이렇게 다문화센터로 새롭게 거듭나면서 이제 우리 일산에 계신 분들이 다시 어깨를 겯고 함께 손잡고 활동할 무대가 또다시 열린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이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문을 더 열고 마음도 활짝 열어 자부심을 갖고 활동해주시길 응원합니다.” 향왕법사님의 감동적인 마무리 인사에 이어 개원 축하 떡케이크 커팅식이 진행됐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난 뒤 대중들은 두 줄로 마주보며 앉아 봉사자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과일과 떡, 차를 먹으며 차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돌아가는 대중들을 배웅하며 마지막까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일산다문화센터 개원을 축하하는 분들의 미니 인터뷰 몽골다문화어학원 ‘나무’의 우레 박사님 가족 “오늘 너무 좋았어요. 스님 법문 들어보니 아, 한국 사람들도 다문화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싶어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파주․스리랑카 공동체 대표 다누시카 님 가족과 안자나 님 가족 “아티다 스님 소개로 개원식에 참여했습니다. 내가 사는 고양시에 다문화센터가 생겨 반갑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파주에 스리랑카 가족들이 많이 살아요. 시간 되시면 4월 21일 파주 서영대학교에서 열리는 스리랑카 설 축제에 놀러 오세요.” 양주 마하보디사의 아티다 스님 “오늘 너무너무 좋았어요. 의정부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문을 닫아서 안산에만 다니다가 일산다문화센터가 생겨서 너무도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곳에서도 자주 뵙도록 할게요.” 파주이주노동자센터 샬롬의집 임경란 국장님 “개원을 축하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상담을 받아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을 하는데, 앞으로 일산다문화센터와 함께 소외된 다문화인들의 인권을 위해 함께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문화센터 개원식은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 생생한 모자이크 붓다의 현장이었습니다.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 큰일을 채워나간 수행의 장이었습니다. 특히 부처님이 보여주셨던 평등심과 자비심을 실천할 수 있는 장소가 우리가 함께 수행했던 법당에서 다문화센터로 이어지고 있다는 이 귀한 인연이 새삼 감동과 감사로 다가와 더 뭉클했던 개원식이었습니다. “고통받는 그 사람이 부처다” 스님의 말씀처럼 부처를 모시고 부처의 삶을 체험하는 데 이곳이 법당에서 다문화센터로, 다문화인들과 함께 화합하고 교류하는 따뜻한 공간으로 자리 잡길 응원합니다. 글양은하 사진양은하 편집김난희

복지 2024.04.16. 1,410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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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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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