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수영지회
사람을 살리는 인연

“안녕하세요. 부산울산지부 수영지회 경전대학 진행자 이민영입니다.” 첫 인사와 더불어 자신은 복 많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해맑게 웃는 이민영 님을 만났습니다.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고 반듯한 모습은 옛 초상화 속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했습니다. 궁금해지는 이민영 님의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인연

저는 함양 박씨 종부입니다. 집안일에 손 놓은 시어머니 대신 결혼 초부터 종갓집 살림을 했습니다. 일 경험도 요령도 없는 새댁이 제사 음식과 수십 명의 손님 치르기가 버거워 몸은 늘 탈진 상태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링거를 맞고 버텼습니다. 남편에게 힘들다고 도움을 청하거나 투정하면, “그게 왜 내가 도울 일이냐? 당신 일이고 책임이지”라며 무시했습니다. 박씨 집안 제사를 왜 나 혼자 몸고생, 마음고생, 경제적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지, 원망과 억울한 심정으로 30년 세월을 살았습니다.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수자타 아카데미
▲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수자타 아카데미

2020년 설날, 예년처럼 제사와 손님 접대로 정신없는 와중, TV에서 스님과 질문자의 문답식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설날 특집 방송으로 진행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었습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하지?’라고 생각하며, 방송에 귀 기울였습니다. 저는 법륜스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질문에 유연하고 명쾌한 답을 들으며, 스님에 대한 궁금증이 머릿속에 꽉 찼습니다. 겨우 짬을 내 ‘법륜스님’을 검색했습니다.

연관 검색어에 <정토불교대학>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2019년 35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사찰 중심 전국 일주를 계획했습니다. 사찰 여행과 주변 맛집 탐방으로 나만의 자유시간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대학'이라는 검색어를 본 순간, 먼저 불교에 대해 알고 싶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불교대학 입학 신청서를 냈습니다. 즉문즉설이 맺어준 정토회와의 인연, 첫 단추를 야무지게 채웠습니다. 선배 도반들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토회와 인연 맺으려고 몇 년 정성을 들여도 잘 안 되는데, 민영 님은 스스로 정토회를 찾아와 좋은 인연을 이어 가니 복도 참! 많다, 많아.” 맞습니다. 세상을 살아갈수록 정토회 모자이크 붓다로서의 삶이 복 받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중
▲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중

고대하던 첫 수업, "종교로서의 불교도 철학으로서의 불교도 아닌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배운다"라는 법륜스님 말씀에 호기심과 궁금증이 솟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종교는 기복 신앙으로 늘 기부를 강요하는 듯했습니다. 종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거나 종교인들의 비리가 드러날 때 ‘종교는 신을 빙자한 사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다. '개인은 행복하고 사회는 평화로우며 자연이 아름다운 삶을 지향'하는 정토회 이념이 제 신념과 잘 맞았습니다. 그랬기에 지금, 제가 서있는 곳에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물질적으로 부족했지만, 정 많고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굶지 않고 무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착하고 공부 잘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고 자식이 많아, 삼 일 밤낮을 울며 고집 피운 덕에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고등학교는 오빠와 동생들 학업과 맞물려 더 힘들었습니다. “내가 장학금 받아 해결하겠다. 졸업 후 취업하면 동생들 학비도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부모님을 설득해 장학금 받는 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담배 농사를 지었는데,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맡아 바깥일로 늘 바빴습니다. 엄마는 집안일에 아이들 뒤치다꺼리와 농사일로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바쁜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농사일도 거들었습니다. 엄마가 낮에 담배를 따면, 밤늦도록 담배 엮는 일은 언제나 제 몫이었습니다. 엄마는 오빠나 남동생에게는 늘 "공부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서러운 줄도, 불평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렇게라도 공부시켜 준 부모님께 감사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 부모님께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어 뿌듯했습니다. 졸업 후엔 은행에 취직하여 집안을 도울 수 있어 마냥 좋았습니다.

어릴 때 제 꿈은 문교부 장관, 지금의 교육부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간절하게 공부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데, 왜 할 수 없는지 불만이었습니다. 누구든 공부하고 싶다면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2023년 11월 두북수련원, 김장 봉사 활동 (오른쪽 두 번째 이민영 님)
▲ 2023년 11월 두북수련원, 김장 봉사 활동 (오른쪽 두 번째 이민영 님)

결혼, 그 전쟁 같은 삶

이십 대의 저는 의지와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마음먹은 일은 꼭 했고, '실패 없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멋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잘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스물한 살에 만난 남편은 자상한 것 빼곤 무엇 하나 제대로 가진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천막을 치고 살아도 두려울 게 없다'라고 믿었습니다. 부모님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제 고집으로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결혼 생활 30년 내내 쉼 없이 몰아닥쳤습니다. 결혼 생활은 내 한 몸 피할 곳 없는 전쟁터 같았고, 칼 한 자루로 빗발치는 화살을 막아내는 고군분투한 삶이었습니다.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친정엄마와 성향이 다른 시어머니는 가사에도 육아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 년에 제사가 열한 번인 종갓집의 대소사를 막 결혼한 제게 맡겼습니다. 그러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아내에게 배려와 공감 없는 이기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양육과 병행했던 직장생활은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후 시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5년간 병시중을 하고, 병원비까지 감당하자 저는 완전 탈진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았을 땐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하늘이 무너지듯 참담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해 친정에 의지할 수도 없었고, 외롭고 모진 세월을 오롯이 혼자 감당했습니다. 세상 누구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술을 진탕 먹은 어느 날, 마침 집에 온 아들을 붙들고 대성통곡 했습니다.

2023년 12월 경전대학 학생들과 JTS 거리모금 활동(왼쪽 첫 번째 이민영 님)
▲ 2023년 12월 경전대학 학생들과 JTS 거리모금 활동(왼쪽 첫 번째 이민영 님)

남편의 빚 보증을 선 저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퇴직금은 고스란히 빚 청산에 쓰였습니다. 이혼 후 고향에서 친정 부모님과 마음 편히 살고자 했지만, 이 희망도 하늘은 제 편이 아니었습니다. 큰아들이 이혼했습니다. 어린 두 손녀를 돌보는 커다란 숙제가 떡하니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시련이 끊이지 않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습니다. '죽어야만 불행이 끝나는가?' 삶의 끈을 그만 놓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생각한 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운명처럼 만났고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세상엔 절묘한 인연을 맺는 순간이 있나 봅니다. 가끔 생각합니다.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참으로 사람을 살리는 소중한 인연입니다.

수행의 힘

법륜스님의 법문은 스펀지가 물을 만난 듯 제게 스며들었습니다. 결혼으로 삶이 힘들었기에 모든 법문은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즉문즉설 내용은 더 큰 공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저거 내 얘기인데, 저 말씀은 나한테 하는 얘기인데….’ 매 순간 깨우침이었고, 감사였으며, 눈물이었습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수없이 했습니다. 법문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 기쁨으로, 감사로 나를 채웠습니다.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중 이민영 님
▲ 2024년 1월 인도성지순례 중 이민영 님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제게 스님은 매일 고마운 분이었고, 법문은 하루를 시작하고 지탱하는 힘이었습니다. 힘들어서 죽고 싶었던 순간들, '왜 내게 이런 고난들이 쉼 없이 밀려오냐?'라며 원망으로 산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30년, 그 아픔과 고통이 있어 지금 자유로움과 기쁨을 누립니다. 제게 닿은 세상 모든 인연이 필요한 것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그때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견디고 살아내니 복으로 이어짐도 깨닫습니다.

인도성지순례를 통해 ‘모든 분별심은 내 마음이 일으킴’을 마음 깊이 깨달았습니다. 처음으로 지극히 ‘평안한 마음’과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체험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정토회를 만나기 전, 외도한 남편에게 삼 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숨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 투명 인간 취급했습니다. 내 삶의 불행이 모두 남편 때문이라며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는 남편과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와 함께하는 일상이 괴롭지 않고 편안합니다.

2022년 3월 사랑하는 두 손녀와
▲ 2022년 3월 사랑하는 두 손녀와

새벽 기도를 하며 온전히 깨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누립니다. 봉사와 전법 활동을 통해 도반들과 함께 정토 세계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이제는 주변의 각박하고 힘든 상황에 흔들리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제 몫의 일로 담담하게 수용합니다.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하여 제사 때마다 괴로웠던 마음이 죄송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혼한 며느리도, 작은 며느리도, 주변 누구도 탓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섯 살, 일곱 살 때 제게 온 두 손녀는 초등학생이 되어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길에서 뜻하지 않게 만난 복병을 돌아봅니다. 법문과 수행으로 제 삶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고, 주변과 더불어 사는 삶에도 눈을 뜹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용서 못 할 사람을 용서하고, 태산 같은 어려움을 대처하는 힘은 바로 매일의 수행에서 나옵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수행의 힘을 저는 믿습니다.


정토회를 만나 ‘복 받은 삶’을 누린다는 이민영 님. 외롭고 힘든 전쟁터 같았던 삶을 포용하고 그 삶에서 생긴 상처와 화해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가시밭길 30년, 힘든 삶 속에서 무한 자기 긍정을 끌어낸 것은 매일의 수행임도 깨닫습니다. 그의 단단한 수행의 힘이 참 부럽습니다. 고맙습니다.

글_이혜정 희망리포터(부산울산지부 금정지회)
편집_이주현(부산울산지부 동래지회)

전체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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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합니다

수행과 봉사로 지난 힘들었던 시간을 거름으로 일구어내신 인생에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수행을 통해서 행복하게 살고 계시니 제가 앞으로 본받아 가고 싶은 모습입니다. 소중한 경험담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에너지를 얻습니다

2024-04-30 18:41:28

강민선

민영님의 모습이 나와는 다른데가 있다고 느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힘든시간 지나고, 앞으로는 평안한 날만 남았네요 불법을 만났으니까요^^
저도 부지런히 민영님 본받아 수행정진하면서 행복해볼까 싶네요
감사합니다~~~

2024-04-27 18:49:03

변미원

밝고 건강한 웃음으로 뵈었는데 정토회의 힘이였네요 함께 가는 도반으로 글을 읽으며 뭉클합니다 소중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2024-04-26 10: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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