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행자의 하루

북미동부지회
모금이 모여 생명을 살리고

민덕홍 님은 미국 JTS 사무국장으로 19년째 JTS를 이끌어 왔습니다. 지난 1월, 4차 백일기도 입재식에서 복지상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전 민덕홍 님을 상상하며 긴장했습니다. 두 번의 인터뷰를 하며 마음이 참 편안했습니다. 잔잔한 울림이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정토회와의 인연

한국전쟁 중 이북에서 온 아버지는 친구가 없었고, 직장을 마치면 항상 집에서 조용히 지냈습니다. 아버지의 내성적인 성격을 닮아 저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도덕 시간에는 ‘인생이 뭘까?’ ‘왜 살까?’라는 질문에 꽂혔습니다. 해답을 찾을 때까지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연구하는 일을 선택했고, 1995년 박사과정으로 미국 텍사스에 유학 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2005년 제1회 미국동부 합동 불교대학 졸업식 (아래 맨 오른쪽 민덕홍 님)
▲ 2005년 제1회 미국동부 합동 불교대학 졸업식 (아래 맨 오른쪽 민덕홍 님)

함께 유학 온 아내는 학위 후, 연구 과정을 마치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부산 동래 법당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여 정토회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아내는 제가 다니는 학교의 한인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으며 정토회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통해 정토회를 만났습니다. 저는 무신론자로 불교를 잘 알지 못했고, 학위를 따는 목표 외에 취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통해 만난 불교 교리는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또 아내가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2017년 광화문 평화행진 (아내 김순영 님과)
▲ 2017년 광화문 평화행진 (아내 김순영 님과)

당신이 한번 맡아보게

텍사스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2년 메릴랜드로 오면서 정토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자유로운 연구직이고, 직장에서의 진급 및 경제적 부는 우선순위가 아니었기에 정토회 활동에 시간을 많이 냈습니다. 워싱턴 법당 초창기 법당이 없어 커뮤니터 장소를 빌려 금강경 강의를 지역 사람들에게 상영했습니다. 나름 애환이 많았고, 발로 뛰어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2004. 3. 17. 워싱턴 법당 금강경 강의 (앞줄 맨 오른쪽 민덕홍 님)
▲ 2004. 3. 17. 워싱턴 법당 금강경 강의 (앞줄 맨 오른쪽 민덕홍 님)

1990년대 미국에서 법륜스님의 순회 법회와 정토회 모임이 활발했으나, 90년대 말 북한 돕기 운동으로 조금 주춤해졌습니다. 우리 부부가 워싱턴 메릴랜드에 이사 오고 아내의 활발한 성격 덕분에 재건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워싱턴 정토회 모임을 처음 시작했고, 뉴욕 정토회도 지원했습니다. 5시간 걸리는 뉴욕으로 1~2주에 한 번씩 가서 활동했습니다. 당시는 미국 JTS 활동을 뉴욕 정토회에서 했습니다.

2005년 5차 천일결사 때, 법륜스님은 제게 미국 JTS 사무국장을 제안했습니다. 미국 JTS는 기부금을 관리하므로 무엇보다 재정이 투명해야 합니다. 스님은 "당신이 믿음이 간다. 당신이 JTS를 맡으면 무리 없이 할 수 있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무국장을 맡고 20년이 지났습니다.

내 생각에 빠지면

저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사회활동 조직에 발 들였습니다. 직장보다 애정을 가지고 도반들과 회의도 잘하려 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회의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도반으로부터 “회의가 부담스럽고 힘들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법문으로 세상의 진리를 찾은 듯 좋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존재였나?’라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상대가 내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받아들임’에 고민했습니다.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왜 이렇지?’라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2017년 광화문 평화행진
▲ 2017년 광화문 평화행진

‘아,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내가 잘하고자 해도 다른 사람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깊이 생각해 ‘진리에 가까이 갔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다 제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빠지면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진다’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때부터 수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내 생각에 빠지는 업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격은 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변하는 듯하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제 성격이 드러났습니다. 지금은 제 성격을 알아차리는 재미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라고 알아차리기 것이 저의 수행 과제입니다.

모금이 모여 생명을 살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활동은 2011년 북한 식량 지원 활동입니다. 당시 북한이 식량난으로 어려울 때, 유엔 제재와 남북한 긴장 상태로 한국 지원이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미국 지원은 가능해 우회적으로 북한을 지원했습니다. 국제적인 구호단체인 JTS가 북한을 도울 수 있어 보람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의 로힝야 난민들에게 가스스토브 10만 개를 지원한 활동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미국 JTS에서 큰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한국, 미국 정토회 활동가가 난민캠프에 파견되어 난민들의 실상을 직접 살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조리할 연료를 가장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가스스토브를 대량 지원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을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JTS의 큰 장점입니다.

2016년 12월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왼쪽 민덕홍 님)
▲ 2016년 12월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왼쪽 민덕홍 님)

JTS가 필리핀과 동남아에서 활동했던 경험으로 작년부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로 활동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최근에는 터키, 시리아 지진으로 중동까지 지원했습니다. 미국 JTS도 규모가 커졌고, 모금액이 크기에 중동 지원을 책임지고 했습니다. 중동의 터키까지 JTS가 지원할 수 있어 무척 보람 있었습니다.

미국 JTS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JTS의 다양한 나라 지원 활동에 감동합니다. JTS 봉사자들은 사람들이 계속 기부할 수 있도록 '신뢰'에 초점을 맞추고, '투명한 회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부하는 사람에게는 큰돈이 아니지만, 그 돈이 모여 극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부한 금액은 정토회 활동가들의 활동비로 쓰이지 않고, 대부분 지원비로 쓰이므로 활동가 및 봉사자들의 자부심도 높습니다.

꾸준함의 결실

미국은 각 주마다 거리가 멀어 봉사자들 만나기가 어렵고, 모든 일을 비대면으로 하니, 힘든 점도 있습니다. 봉사자들도 오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온라인 시스템으로 일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으면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이곳 일은 번역, 회계 등 일시적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기다려야 하고, 인내가 필요합니다. 저도 잠깐 JTS 일에 소홀하면 업무 연결이 잘 안 됩니다. JTS 일은 끊임이 없어 항상 일 생각이 머릿속에 맴돕니다.

2018년 JTS 거리모금 (오른쪽 두 번째  민덕홍 님)
▲ 2018년 JTS 거리모금 (오른쪽 두 번째 민덕홍 님)

미국 JTS는 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열 분의 봉사자들이 꾸준히 일하고 있습니다. 평소 온라인으로 각자 일하지만, 1년에 한 번 여는 시무식에는 모든 봉사자가 참석해 한해를 기획하고 어려움을 공유합니다. 그 해의 JTS 활동 영상을 보면서 자부심도 느끼고 에너지도 얻습니다. 또 법사님과 간담회 시간을 통해 힘든 일이나 봉사하면서 느낀 궁금증도 해결합니다.

복지상은 저 혼자가 아닌 미국 JTS 도반들이 함께한 노력의 총합입니다. 미국 JTS는 그동안 모금 활동을 주로 하여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봉사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많은 사람이 후원했고, 이것이 쌓여 작년 JTS 활동의 많은 부분을 미국 JTS가 지원했습니다. 이런 점이 복지상과 연결되었습니다. 저 또한 JTS 활동을 도반들과 함께 꾸준히 한 것이 뿌듯합니다.

2018년 워싱턴 정토회 9-4차 백일기도 입재식 (둘째 줄 오른쪽 두 번째 민덕홍 님)
▲ 2018년 워싱턴 정토회 9-4차 백일기도 입재식 (둘째 줄 오른쪽 두 번째 민덕홍 님)

하루살이에서 수행자로

저는 정토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편하게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어려운 과제들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수행을 통해 배웠습니다. 예전에는 갈등을 회피하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서로 다르기에 갈등이 일어남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싫은 마음이 일어나면 인정하고 ’지금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수행 과제로 삼습니다. 정토회 활동을 통해 '상대를 알고, 나를 알아차리는 소소한 깨달음'이 참 감사합니다. 활동할 수 있는 일상 자체가 즐겁고 고맙습니다.


기사를 쓰는 지금,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 관계에 주눅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민덕홍 님을 인터뷰하고, 민덕홍 님의 이야기가 법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내가 잘하려 해도 상대방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를 탓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고 이 순간 깨어있을 수 있다‘라는 메세지가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민덕홍 님은 “시절 인연으로 복지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시절 인연으로 민덕홍 님을 만나 행복합니다.

글_김경진(국제지부 북미유럽지회)
편집_김윤희(강원경기동부지부 용인지회), 최미영(국제지부 아태지회)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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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명행

감사합니다. 저도 수행자의 삶을 응원합니다!

2024-05-10 06:30:47

황지우

전법교육을 받는중인데 오늘 민홍덕님의 글을 읽으며 미국JTS사업 이야기를 들으니 한결 공부하는데 이해가 쉽습니다.

2024-05-09 00:32:49

김남희

부부가 같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거사님 보살님 덕에 해외에서도 스님이 걱정없이 다니셔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도 되고 의지처가 되는것 같아 제마음이 좋습니다
응원합니다

2024-05-08 07: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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