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생방송 여름 명상

7월 26일(금) ~ 7월 30일(화) 4박 5일
7월 26일(금) ~ 8월 1일(목) 6박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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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여름 명상 바라지

7월 19일(금) ~ 8월 2일(금) 14박15일
정토연수원(선유동) /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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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다시 만나다

2024 행복한 대화

법륜스님의 오프강연 행복한 대화 시즌2!
오프강연이 전국 15개 도시로 직접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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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오픈!

오늘, 첫 만남 입니다

정토회가 처음인 분을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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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행자의 하루

아름드리 보리수처럼_필요한 곳에 그늘이 되어주는 삶

유재학 님의 글을 읽으면서 작은 묘목이 비바람을 맞으며 성장하여 마침내 마을을 지키는 아름드리 나무가 된 모습이 상상이 되었습니다. 목가적인 풍경 속 인물이 되어,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아서 마치 지금 힘든 일이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닐 거야 하는 위로를 받는 느낌이랄까요? 소박하지만 따듯한 유재학 님의 글에서 배울 점이 많아 감사하고, 소개할 수 있어 기쁜 마음입니다. 밑거름을 주고 저는 충청남도 공주시 마곡사 근처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소 장사꾼이었는데, 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에서 화투를 치느라 종종 귀가가 늦어지곤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못마땅하던 어머니는 화투 치러 나가는 아버지의 뒤통수에 대고 화를 내시기도 했지만, 비교적 부모님은 사이가 좋으셨고 그 속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습니다. 유재학 님.right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는데, 개구쟁이 기질이어서 친구가 놀리기라도 하면, 그 길로 똥 한 바가지를 퍼서 쫓아가 으름장을 놓곤 했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농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서 일선에서 선반, 밀링 일을 했습니다. 이 일은 공구가 빠르게 회전함으로써 금속의 표면을 다듬거나 구멍을 내는 일입니다. 작업 시에 장갑조차 끼지 않는 것이 원칙일 만큼 위험에 노출된 일이고 산업현장에서 두루 쓰이는 부품을 정밀하게 가공하는 전문 기술이기도 합니다. 군대 제대 후에는 청각장애인이 직업 훈련을 받는 대전원명학교에서 선반과 밀링 일을 가르쳤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들은 집중력이 뛰어났는데, 순수하게 일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매형을 통해 전기 관련한 일을 소개받아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전기 일은 문외한이어서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전수해주기를 청했지만, 다들 자기 밥벌이를 지켜내느라 가르쳐주기를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고마운 친구의 도움으로 전기회로 도면을 공부하고, 배선공사도 해보면서 점점 일에 재미를 붙여나갔습니다. 당시 용접 일도 병행했는데, 새벽까지 일하는 날에는 용접 시 일어나는 불꽃과 연기로 인해 부풀어 오른 눈과 눈물을 가리려고 지하철에서는 신문을 사서 펼쳐 들고 앉아 가기도 했습니다. 고단했지만 일 배워가는 재미를 느끼던 시절입니다. 을지로에서 성수동으로, 또 경기도 광주의 지하철 회사로, 직장을 옮겨가며 노후한 배전반이나 전선관을 교체하는 전기기술자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연등행사 사전 준비 곁가지를 내려 그늘을 만들고 어느덧 제 나이 41살이 되자 미래의 아내를 찾아 다른 노총각 6명과 함께 베트남으로 결혼 원정길에 올랐습니다. 결혼정보회사 사장님의 소개로 만난 제 아내는 20명이 넘는 대가족 속에 자라서인지,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우리의 앞날이 꽤 괜찮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 아내는 베트남을 떠나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저 하나 달랑 믿고 한국으로 온 아내는, 제가 야간 근무를 나갈 때면 차 안에서 쪽잠을 자가며 새벽까지 기다리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곧 첫째 아이가 태어났고, 연이어 둘째와 셋째 아이를 안았습니다. 아내는 세 아이를 데리고 한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다문화센터를 다녔으니 매우 힘들었을 겁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으나 가족을 이루어 뿌리를 내리니,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대전에서 고물상을 하는 작은형님 일을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우리 가정의 경제 기반이 빨리 잡힐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이 수긍이 가서, 그 길로 사표를 쓰고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사표를 쓰고 내려갈 때의 마음과 그곳에서의 실생활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전기기술자로서 주어진 일만 성실하게 할 줄 알았지, 물건을 거래하거나 돈이 오가는 일에는 요령이 없었습니다. 형님은 그런 저에게 내심 불만이 있었는지 같이 밥을 먹다 말고, “너에게 주는 월급 정도면 여기서 두 사람을 더 쓸 수 있다”라고 하셔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윤택하고 안락한 그늘을 만들어주고자 선택한 대전행이었는데,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보리수 활동 중 풍파를 겪으며 단단해지고 그날은 여느 때처럼 고철을 가득 실은 트럭을 몰아 회사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산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정면에서 오는 버스를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더 큰 사고를 막아보고자 벽을 들이받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트럭은 벽을 뚫고 나가서 산 중턱에 아찔하게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옆자리의 동승자도 저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은 제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고 후에 심적으로 힘들던 대전 생활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다시 경기도 광주로 돌아왔습니다. 전기기술자로 재취업하기까지 일용직을 전전하던 시기라 마음이 불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로부터 정토불교대학 입학을 권유받았을 때 선뜻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지역을 이동해가며 일을 찾던 시기에 경전대학을 진학했고, 출석 일수를 채우기 위해서 각 지역 법당에서 이동수업을 들을 때가 잦았습니다. 그때 도반들은 처음 보는 저를 친밀하고 격의 없이 대해주었고, 제 마음은 따뜻해졌습니다. 대전에서 겪었던 마음의 상처와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쪼그라든 마음에 훈풍이 부는 듯했습니다. 도반들의 정을 느끼며 제 마음은 안정을 찾아갔고, 자연스레 천일결사 입재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천일결사를 시작하고 기도를 드릴 때면 어쩐 일인지 어머니 생각이 자꾸 났습니다. 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본으로 수출하는 떡갈나무 잎과 망개나무 잎을 산에서 따오시던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오랜 기간 묵묵히 할머니의 병시중을 들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한량없는 사랑을 베풀고, 주어진 상황을 원망 없이 수용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니, 힘들다고 느껴지던 제 상황이 편안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연등행사 사전 준비 중 한 그루의 보리수가 되다 통일특별위원회에서 한창 활동하던 시기에, 보리수에 합류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제안을 망설임 없이 수락할 수 있었던 것은, 짊어진 짐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보리수 씨앗 교육 4기로 졸업하고,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출근해서 보리수 전기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리수 정진하면서 받아 든 기도문은 ‘우리 아이는 문제가 없습니다.’입니다. 제 아이들은 소위 다문화 가정 출신의 아이입니다. 큰아이는 고3인데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취업하겠다며 은행에 입사원서를 넣었습니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면접을 봤는데,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상처받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떨어진 것이 실패가 아니라 경험임을 스스로 알아가도록 기다려주는 일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에 아이가 도움을 청한다면 흔쾌히 응하겠지만 언제까지나 같이 살면서 해줄 수는 없기 때문에 그저 지켜보려고 합니다. 기독 재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아빠, 엄마를 전도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을 때면, 엄마도 아빠처럼 정토회에 나가야 한다는 말로 우리 부부를 웃게 만듭니다. “아빠는 정토회에 다녀서 잔소리를 안 해서 좋아” 저는 정토회에 인연이 닿아 보리수 정진을 하기 전까지는 봉사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과 가족만 보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눈을 돌려 주변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회사에서 오르내림이 있고, 나이 많은 선배의 지적이 간섭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수행으로 자신을 점검하고, 법사님과의 간담회에서 마음을 내어놓으면 금세 가벼워집니다. 일어나는 마음이 길게 가지 않으니, 가정생활이나 봉사활동 그리고 회사생활까지 그저 가볍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 지난 삶을 훑어보니, 꼭 일어나야 할 일들이 매 시기 일어났고, 경험으로 단단해진 뿌리는 쉬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수행하고 봉사하는 덕분에 필요한 곳에 그늘을 만들어주며 더불어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가등 다는 날 이 글은 2023년 11월호에 수록된 유재학 님의 보리수 소감문입니다. 글유재학 편집월간정토 편집팀 투고 및 후기 작성하러 가기 법보시 및 정기구독하러 가기

월간정토 2024.06.17. 743 읽음

정토행자의 실천

뜨끈한 쌀밥같은 강연-대구 행복한 대화

지난 5월 31일 대구에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4년 만에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은 오후 2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날 스님은 총 8명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자들은 안타까운 사연을 풀어냈고 참가자들은 서로를 보듬어주었습니다. 이 강연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을까요? 이웃을 위해 강연을 준비한 행복 시민들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발대식 이런 큰 행사는 발대식으로 시작합니다. 발대식은 5월 12일 화창한 일요일 오후에 열렸습니다. 봉사자들은 서로 얼굴을 익히고 신나게 게임도 했습니다. 웃음소리가 유쾌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게임에 진심인 편 사전 접수 천여 명 대구 강연장은 420석 규모인데 본격적인 홍보를 하기 전에 이미 천여 명이 사전 접수를 했습니다. 대구 강연에 앞서 5월 20일 부산에서 먼저 지역 첫 강연이 열렸습니다. 그날 총괄과 꼭지들은 시간을 쪼개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부산 강연장에서 기다리다가 입장하지 못한 분들은 실망과 화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부산 현장을 본 대구팀은 긴장했습니다. 다시 회의를 거듭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사전접수자들에게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입장한다는 공지와 사과 문자를 보냈습니다. 강연장 풍경 오후 1시 봉사자 도착 봉사자들은 강연장에 아주 일찍 모입니다. 무려 6시간 전, 오후 1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책상을 옮기고 포스터를 붙이고 현장을 파악합니다. 준비할 게 많아요 책 판매팀 준비 완료 오후 4시 여는 모임 권명순 총괄이 당부했습니다. “지금까지 기다리다가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은 화가 많이 날 겁니다. 당연하지요. 그래서 오늘 우리 봉사자들은 무조건 방긋 웃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죄송합니다.와 방긋 웃기를 선택한 그들은 천하무적, 어벤져스 팀이었습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 오늘도 행복합니다 오후 5시 현장의 시민들 강연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섰지만, 걱정과 달리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장 대기자가 350명 정도 되었을 때 입장 마감 문자를 사전접수자들에게 보냈습니다. 400여 명이 강연을 기다리는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강연을 기다리는 참가자들 오후 7시 30분 강연 시작 축하 공연으로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기타 반주에 맞춘 노랫소리가 흥겹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이 큰 소리로 환호했습니다. 스님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뭐 한다고, 애들처럼 소리를 질러요?”라고 농담합니다. 미리 질문을 접수한 5명과 현장 질문자 3명이 스님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실무 총괄 아들이었습니다. 우연 같은 필연이었습니다. 씩씩한 고등학생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총괄은 1명이 아니라 64명입니다 이날 행복 시민 64명은 140명처럼 일했습니다. 행복 시민각주1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손영주 행복 시민 이야기 사회를 맡았습니다. 너무 떨렸어요. 실수하지 않으려고 2주 동안 계속 사회자 대본을 소리 내 외웠더니 9살 아이도 다 외워버렸어요. 그날 입을 옷도 신경 쓰이고,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히 마쳐서 후련해요. 주부인 제가 이런 큰 경험을 할 수 있어 고맙습니다. 아이가 저를 많이 자랑스러워합니다. 임애란 행복 시민 이야기 내부 안내를 맡았습니다. 사전 연습을 세 번 정도 해서 어렵지 않았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활동하느라 조금 바빴습니다. 오늘은 진짜 모자이크 붓다가 된 기분입니다. 스님이 사회참여 활동을 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다음에 또 봉사하고 싶습니다. 방긋 웃는 얼굴, 최고 김인숙 행복 시민 이야기 전화 받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전 접수가 입장권이 아니라는 문자를 받고 항의 전화가 좀 왔어요. 강연 날 화를 많이 내는 전화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 기도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어요. 현장에서는 괜찮다, 괜찮아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힘들었던 저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신광섭 행복 시민 이야기 멀리 영주에서 조점숙, 박경순 님과 함께 왔습니다. 직장생활이 바빠서 봉사를 자주 못 했는데 이번에는 꼭 하고 싶어서 어렵게 휴가 냈습니다. 서로 의논하고 배려하는 시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뿌듯합니다. 뒷정리도 말끔하게 강연장에서 봉사자 64명은 한 몸처럼 움직였습니다. 권명순 총괄에게 “팀원들이 이렇게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비결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총괄은 회의라고 말했습니다. 봉사자들이 먹을 떡을 결정하는 일부터 스님 책 사인회 위치까지 모두 회의에서 의논했다고 합니다. 작은 일도 회의를 거치니 얼핏 생각하면 시간 낭비 같습니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은 자발성이 없고 신바람도 나지 않습니다. “총괄은 1명이 아니라 64명입니다”라는 말에 잔잔한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닫는 나누기 중 행복 학교각주35가 열린 지 9년이 되었습니다. 긴 세월입니다. 길이 없는 길을 걸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행복 시민들은 마을 입구를 지키는 아름드리나무 같았습니다. 그 나무 아래에서 푹 쉬고 온 기분입니다. 행복 시민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글박언희 희망리포터 사진박우용 편집도경화 각주1 행복시민 행복학교 전 과정을 수료하고 행복시민모임에서 지역 활동을 실천하는 시민 각주35 행복학교 법륜스님 행복학교는 온라인에서 일주일에 한 시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고 진행자와 참가자가 행복을 배우고 연습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체험의 장입니다. 행복학교는 종교를 떠나 누구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행복학교 신청 httphihappyschool.com

주1일봉사 2024.06.11. 1,155 읽음

정토불교대학

삶을 바꾸는 공부
정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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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체득하는
정토경전대학

※ 정토불교대학 졸업 후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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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이야기

우연히 찾아온 정토불교대학과의 만남

윤정숙 님 - 2018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지금까지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빛나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기 위해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었죠. 우연히 친구와 얘기하다가 알게 된 정토불교대학.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의 기준점을 찾고 싶어 입학하게 되었지요. 집착과 이기심이라는 어리석음으로 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제 삶에 만족해요.

부부에서 도반으로

이용준·김서화 님 - 2019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이제는 도반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있어요. ‘아내는 이러한 사람’, ‘남편은 이러한 사람’라는 고정관념이 내 삶을 고단하고 힘들게 만들었음을 불법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잘 풀리지 않는 부분도 법문을 들으면 해소가 되고 처방전을 받은 듯 시원해요.

이혼소장을 멈추게 한 정토불교대학

최영미 님 - 2015년 정토불교대학 졸업

13년 내내 총성없는 전쟁과 같았던 결혼생활. 이혼장을 쓰던 중에 정토불교대학 입학홍보문자를 받게 되었어요. 남편과의 싸움은 제 인생의 풀지 못하는 숙제 같았는데, 그게 해결되니까 풀지 못하는 숙제가 없어졌어요. 제가 변하고 나니 남편이 불교대학 홍보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