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2.24 화엄반 회향수련, 통일의병대회
“무시받는 느낌이 들 때 화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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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1년 동안 법사 교육을 받은 화엄반 행자님들이 회향 수련을 하고, 정토회 전법회원 교육을 받고 있는 회원들이 통일의병대회를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에 화엄반 회향 수련에 참석했습니다. 화엄반 행자님들은 법사 수계식을 앞두고 지난 2박 3일 동안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머물며 연찬과 자자를 진행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스님과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먼저 스님이 법사가 되면 무엇을 기준으로 자기 점검을 해나가야 하는지 방향과 지침을 알려주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법사 교육받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일 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으니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법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모두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법사라는 이름에 걸맞은 마음가짐과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해서 부족한 부분은 개선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수행자는 겸손하되 당당해야 합니다. 적어도 세속적인 잣대로 비굴해지거나 열등의식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키가 조금 작다, 학벌이 좀 낮다, 무슨 기술이 없다, 어떤 지식이 없다, 뭘 좀 못 한다, 이런 것으로 위축되어서 당당하지 못한 태도는 법사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법사라면 겸손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삶의 자세가 당당해야 합니다. 자신의 수행을 반성하고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지만,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 열등의식을 갖거나 마음이 움츠러든다면 법사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법사가 유념해야 할 몇 가지 점검 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다음은 지난 1년 동안 수련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각자 수행 과제로 삼고 정진해 온 내용, 수행 과정에서 아직 의문이 남는 점 등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무시받는 느낌이 들 때 화가 올라옵니다

“지난 1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저 스스로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는 기쁘고, 반대로 무시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는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어릴 때부터 늘 존중받으면서 살아왔다 보니까 무시받는 느낌에 대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시받는 느낌이 화로 옮겨지는 것을 계속 관찰하다 보니까 화가 폭력적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정진을 꾸준히 해야겠지만 어떻게 하면 화를 표출하지 않고 내면에서 소화할 수 있을지 좀 더 분명하게 관점을 잡고 싶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느끼는 순간 화가 올라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말이나 행동이 폭력적으로 나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하고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화를 하다가 자기가 무시받는다고 느껴서 화를 내며 말을 험하게 내뱉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똑같이 무시받는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시 상대방에게 강하게 전달이 되면 상대방 또한 굉장히 무시받았다고 느껴서 결국 오해가 증폭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다른 사람과 부딪힐 때 상대방과 소통이 안 되고 오히려 충돌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외국이나 낯선 곳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을 하게 되면 사고가 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 처할 때는 매우 주의를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수행적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정진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업무를 맡을 때 가능하면 그런 환경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업식이나 성격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자극이 강하게 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정도로 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위험에 대해서 우선 본인이 자각을 해야 하고, 앞으로도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오해가 생기면 그걸 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두 번 이야기해서 안 풀린다고 꽁해서 지내기보다는 제 3자를 통해서 푼다든지 해서 오해를 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해를 푸는 과정이 없이 꽁한 상태로 계속 지내면 그것이 트라우마가 됩니다. 결국 자신의 상처로 남게 되기 때문에 나중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다시 격렬하게 반응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위험을 감지하고 있으면 충돌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타인을 무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가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해도 그 사람의 버릇이 그런 거예요. 누군가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그냥 그 사람의 태도가 그렇게 습관으로 형성된 겁니다. 수행적 관점에서는 모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무시받은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으로부터 한 번도 하대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무시받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무시받는 느낌이 들 때는 ‘지금 내 까르마가 반응하는 것이지 상대가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내 업식이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보고 그렇게 반응하는 것을 알아차려서 상대를 탓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이건 내 까르마가 반응하는 것이다’ 하고 자각하는 것이 감정을 진정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스스로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예요. 화가 일어나는 것은 상대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느낄 때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런 감정이 일어날 때 ‘상대는 그냥 자기 습관대로 말하고 행동할 뿐인데, 내 까르마가 그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설령 반응을 하더라도 폭력적으로 나가는 걸 막아낼 수 있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나를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는, 실제 상대방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상대가 나를 인정한다고 내가 느끼면 좋은 감정이 일어나고, 상대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느끼면 나쁜 감정이 일어나는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칭찬보다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 무엇을 더 챙겨야 한다고 지적을 하기가 쉽지 칭찬하는 말은 잘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여기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무던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칭찬이나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일을 같이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칭찬이나 지적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칭찬이나 지적에 본인이 구애를 받지 않으면 자유인이 될 수 있지만, 구애를 받으면 늘 상대에게 매여서 살아야 합니다. 상대가 칭찬을 해주면 입이 벌어지고, 지적을 해주면 입이 비뚤어진다면, 늘 상대만 바라보고 사는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업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칭찬에 구애받는 건 사실 스스로 자유인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장애 요인입니다. 그렇다고 칭찬을 받을 때 기분이 나빠야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기분이 좋아지더라도 그 맛에 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기분 좋음에 취하게 되면 내 존재가 상대방의 칭찬에 종속되는 존재가 됩니다. 그건 상대방에게 내 목줄을 쥐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내 삶의 희로애락을 거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늘 자각을 해야 하고, 상대방의 비난에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늘 자각을 해야 합니다. 까르마가 있기 때문에 칭찬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거기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같이 일을 하다 보면 수고했다는 말을 안 해줘서 섭섭하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상사가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살펴서 칭찬을 해주면 좋지만, 사람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가 불안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에 좋은 말을 바라는 거거든요. ‘저분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는 심리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칭찬을 해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을 내고, 칭찬을 안 해주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내게 되는 겁니다. 심리가 불안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게 됩니다.

질문자도 우선 내가 그런 까르마를 가지고 있다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감하게 반응을 할 때마다 ‘아, 이건 내 까르마의 문제다’ 이렇게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내 까르마의 문제로 자각을 하면 상대방에게 차츰 덜 얽매이게 됩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묶여서 살아가는 겁니다. 꾸준히 자각하면 미워하거나 화가 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나는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내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수행자인 내가 가져야 할 관점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위해서는 그 사람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노고를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고생한 걸 아무도 안 알아줄 때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고생하는 걸 누군가가 알아주면 힘든 감정이 아주 많이 해소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해외 오지에 파견을 가서 근무하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경우에는 자기가 고생을 하거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서울에서 여러 사람이 같이 활동을 할 때는 옆에 있는 도반들이라도 서로 알아주니까 괜찮은데, 오지에 나가서 활동할 때는 거기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법사님이나 도반들이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알아주면 그 사람에게는 굉장한 힘이 되고 용기가 됩니다. 특히 법사가 된 사람들은 항상 사람들을 살펴서 노고를 알아주는 게 매우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면서도 내가 남을 알아주는 것에 대해서는 무심한 편입니다. 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살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법사가 되면 이 부분을 잘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이 활동을 하면서 갖는 불만들은 대부분 업무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알아주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감정이 상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잘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법사님들은 사람들의 노고를 알아줘서 갈등을 풀 때 훨씬 빠르고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알아준다는 게 꼭 잘했다고 칭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일을 하느라 수고한 분의 노고를 알아주라는 거예요.

부부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직장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서 아내한테 ‘오늘 설거지도 하고, 깨끗하게 집 청소도 했네. 오늘 하루 종일 수고가 많았어’ 이렇게 알아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천지 차이입니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겉으로는 표가 안 납니다. 그래도 아내가 수고한 것을 알아주면 관계가 좋아집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이 들어오면 ‘내가 집에 있는 동안 혼자 밖에 나가서 고생 많이 했어요’ 이렇게 알아주는 게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상대를 알아주는 게 세상살이에서는 중요합니다.

수행공동체가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건조한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공동체에서는 늘 그런 것에 구애받지 말라고 가르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칭찬에 구애받지 말라’,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 마음을 다스려라’ 하는 가르침을 늘 듣다 보니까 남에게도 칭찬을 안 하게 되는 거죠. 이런 가르침은 모두 자기한테만 적용해야지 남에게 적용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자꾸 남에게 적용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누가 힘들어해도 ‘수행자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이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특히 몸이 아프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는 수행공동체의 이런 분위기 때문에 실제로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법사가 되려면 어떤 관점을 갖고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지 좀 더 명확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화엄반 회향 수련을 모두 마쳤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제15차 통일의병대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통일의병 입문 과정을 마친 예비 통일의병 240여 명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고, 선배 통일의병들이 유튜브로 접속한 가운데 수행문을 함께 낭독하며 통일의병대회를 시작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통일의병을 만든 취지가 무엇인지 이야기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비 통일의병들은 전법활동가 교육을 수료하고 통일의병이 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다섯 번에 걸쳐 학습을 진행했습니다. 학습 과정에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수행 말고 왜 통일의병 활동을 따로 해야 하나요?

“수행을 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평화를 지켜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통일의병 활동을 따로 해야 하나요?”

“부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 중의 하나가 ‘인연과보’입니다. 인과 연이 만나서 과보를 만듭니다. 항상 원인과 조건이 결합을 해야 과보가 생깁니다. 원인의 범위 안에는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도 포함됩니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가 열린다고 할 때 좋은 씨앗이 인이라면 그 씨앗을 심는 밭은 연입니다. 좋은 씨앗과 좋은 밭이 만나야 좋은 열매가 열립니다.

사람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마음을 잘 다스리면 어떤 환경에 처해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수행을 못 해도 주위 환경이 다 평화롭고 착한 사람들만 있으면 나도 덩달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수행을 해도 주위가 너무 열악하다 보면 거기에 내가 휩쓸려서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또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내가 수행을 안 하고 성질이 더러우면 불행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나도 나쁘고 환경도 나쁘면 최악이 됩니다. 나는 나쁘지만 환경이 좋거나, 나는 좋지만 환경이 나쁘면 중간이 됩니다. 나도 좋고 환경도 좋으면 최상이 됩니다. 이렇게 네 가지 조합이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켜서 행복해지는 ‘수행’과 우리 주위의 환경을 변화시켜서 행복해지는 ‘정토’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정토회의 설립 취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행을 하고 명상을 해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고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한반도에 아무런 전쟁이 안 나더라도 괴로워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수행을 해서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것은 씨앗을 개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차별과 빈부격차를 없애고 정의롭게 만들어 가는 것은 밭에 거름과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은 이 두 가지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 그렇다면 부처님이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거나 성차별을 부정할 이유가 없잖아요. 이것이 불교의 위대함입니다. 종교는 모든 잘못을 개인의 문제로 너무 몰아간다면, 사회운동은 모든 것을 세상 탓으로 돌리고 세상만 바꾸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자기를 바꾸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것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바깥 환경이 어떻든 내가 영향을 덜 받도록 나를 바꿔 가는 수행과 우리 사회의 환경 위기, 전쟁, 절대빈곤, 차별을 막아내서 사회를 정의롭도록 만드는 실천, 이 두 가지를 함께 해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정토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통일의병이 하는 일은 꼭 통일이라는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평화, 통일, 환경,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구호,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사회 실천활동을 하는 사람이 통일의병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전쟁을 막는 것입니다. 통일의병은 평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의병입니다. 평화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헌법전문에는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쟁을 해서라도 통일을 하자거나 평화만 이뤄지면 통일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평화를 전제로 한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 바로 평화적 통일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그러니 정토회의 핵심 멤버인 전법회원이라면 수행과 통일의병 활동, 두 가지에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물론 통일의병 활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일반회원이 되어서 자기 수행만 해도 괜찮습니다.”

“통일의병은 개인의 수행을 바탕으로 자기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서 살기 좋은 정토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임을 다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궁금함을 모두 해소한 후 통일의병 임명장 수여식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신규 통일의병을 대표해서 한 분에게 스님이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위 정토행자는 정토회 통일의병 입문과정을 이수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통일의 주역으로서
통일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기에
통일의병으로 임명합니다.”

이어서 신규 통일의병 전체에게 스님이 임명장을 수여했습니다.


선배 통일의병들이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신규 통일의병들을 위해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6천 년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족은 외세에 의해 나라가 분단되고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헤어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딛고 오늘날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일구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분단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 땅에 평화를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우리 242명의 통일의병은 환인 환웅 단군 삼신님의 뜻을 기리고 조상님의 은혜를 이어받아 다시는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을 이룰 것을 발원합니다. 5천 년 역사의 전통을 계승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 통일 코리아를 인류 문명사에 우뚝 세울 것을 발원합니다. 이것은 발해 멸망 이후 천 년 동안 이어온 민족사의 한을 풀고 새로운 대한민국 천년의 운을 여는 일입니다.

이런 큰 희망과 포부를 품고 오늘 저희들은 출발합니다. 세상 사람이 뭐라 하든, 세상의 조건이 어떠하든 구애받지 않고 오직 평화와 통일의 길로 매진하여 인류사에 찬란히 빛나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평화일꾼, 통일일꾼이 되겠습니다.”

다음은 통일의병 모두의 의지를 모아 통일의병 서약문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하나. 우리는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둘. 우리는 미래 100년을 결정하는 통일시대를 연다.
셋. 우리는 주변국과 상생하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한다...”

마지막으로 발원문을 낭독하고, 통일에 대한 마음을 모아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통일의병대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신규 통일의병들은 그룹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갔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와 곧바로 서울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네 시간 달려 저녁 8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정토회 임원 2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하루종일 온라인으로 정토회 합동회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6

0/200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

2024-03-20 12:00:45

성연

잘 들었습니다

2024-03-01 12:15:17

정종석

감사합니다

2024-02-28 14: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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